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완성하지 못함

때로 지민은 자신의 순간마다의 선택이 스스로를 자꾸만 더 가난하고 더 가난한 곳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음에도 매번 반대를 고르는지, 그럼에도 시간을 돌려 같은 상황에 놓인다 해도 자신의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지에 대해서도. 구차한 선택들. 분명 피가 날 걸 알면서도 손톱 거스러미를 기어이 잡아뜯는 행위. 강수...

안녕하세요. 저는 밤고래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이하 아무섬)을 다 쓰고 난 다음의 제가 하고 싶은 말들입니다. 이 마당에 당연한 말이지만 어찌어찌 하다가 저째저째 하다보니 어느새 저는 스엠이라는 기업에서 오래간만에 내놓은 4인조 걸그룹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데뷔는 카리나와 윈터라는 이름으로 했는데, 받아들이기로는 '...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15 “슬슬 그 오피스텔도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니?” 식기끼리 서로 부딪혀 달그락 소리만 날 뿐 대화라고는 전혀 없던 식사시간의 침묵이 깨진다. 지민은 고개를 들어 잠깐만 시선을 뒀다. 곧장 눈을 내리깔고는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입술로 가져간다. 여전히 지민의 옆얼굴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보란 듯이 천천히 음식을 곱씹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14 김민정. 김민정. 김민정. …… 김민정. ***** 지민은 20살부터 22살까지의 기억이 분명하지 않았다. 어떤 것은 너무 강렬했고 어떤 것은 너무나 희미해서 마치 일어나지 않은 일로만 느껴졌다. 순간들을 선택적으로 기억했기 때문에 벌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민은 그런 식으로 기억을 선별했다. 어떤 것은 ...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13 민정은 여차하면 비상구 문부터 열고 도망가버릴 사람처럼 연애를 했다. 지민이 느끼기에 언제나 그랬다. 분명 먼저 고백을 한 사람은 민정이었는데 사랑의 크기가 큰 쪽은 언제나 자신인 것 같다고 지민은 느끼곤 했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해주진 않는 민정에게서. 민정을 사랑하는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 줄줄이 그 마음을 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12 다시 시작한 지민과의 연애는 완벽했다. 그 이상 더 표현할 문장이 없을 정도로. 참지 않겠다던 민정의 다짐이 무색하게 오히려 참지 않는 쪽은 지민이었다. 지민은 꼭 시간의 공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굴었다. 고등학생 유지민이 그대로 나이만 먹어 23살의 유지민이 된 것마냥 성실하게 사랑을 표현하고 성실하게 온 몸...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11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침을 맞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잠든 지민의 모습을 보며 민정은 22살 인생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얼마나 돌아왔던지 간에,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모습이 아침 햇살 아래에서 곤히 잠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라면 결국 다 괜찮아진다는 것을. 손을 들어 손등을 지민의 이마에 ...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10 민정은 허둥댔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누군가와 함께 돌아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 당연히 집이 엉망이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까지 지저분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유지민이다 보니 그 기준이 엄청나게 까다로워진다. “원래 이렇게까지 더럽진 않은데.” 그런 말이나 주절대며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자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09 침묵이 이어진다. 그런 밤이었다. 날 선 침묵만이 가득한 밤. 23살이 된 유지민이 기어이 터트린 감정을 22살의 김민정이 정면으로 마주한 밤. 지민에게서 더 이상 건너오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민정은 그 침묵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 질식할 것만 같았다. 숨도 한 번 편하게 쉬지 못했다. 지민은 민정의 바로 앞에 있었다. 뺨...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08 지민은 한계였다. 자신이 한계라는 것을 깨닫기 한참 전부터 이미 그랬다. 19살의 유지민은 이제는 쓰는 사람보다 쓰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바로 그 문장처럼 자랐다. 엄격하신 아버지와 다정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주 싸우긴 해도 사이가 좋은 언니와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 평이한 문장에 남들은 절대 모르는 몇 가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07 “저기. 아까부터 봤는데 나 너 번호 좀.” 지민과 민정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간다.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네. 더 이상 화를 내기도 애매할 만큼 자주 반복되는 상황에 민정은 그냥 쥐고 있던 햄버거나 한 입 더 물었다. 햄버거 집의 냉방 온도는 언제나 민정이 느끼기에는 과도하게 낮았다. 민정은 얼른 이 놈의 햄버거를 먹어 ...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섬 06 연애를 하면 누구나 다 조금씩은 변한다고 한다. 아니 변한다고 했다. 지민은 그 사실을 느끼기보다는 습득했다. 세상의 모든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와 음악들로부터. 혹은 자신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로부터. 그런가. 지민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친구들의 얘기를 경청했고 맞장구를 쳤고 때로는 진심 ...